October 30, 2009

가쿠마루 마츠자키의 복권책동 분쇄하자 도즈카논문의 거짓말과 범죄성을 폭로한다

가쿠마루 마츠자키의 복권책동 분쇄하자

도즈카논문의 거짓말과 범죄성을 폭로한다

민영화 때의 배신을 은폐하고 1047명 투쟁 파괴를 시도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대공황,대형 실업이 격하하고 있는 가운데 국철1047명 해고철회투댕은 이제야 전노동자의 사활을 걸은 투쟁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당치 않게도 국철분할,민영화 때의 가쿠마루 마츠자키에 의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독한 배신을 공공연하게 면죄하며 오히려 미화하는 자가 나타났다. 도즈카 히데오 도쿄대학 명예교수에 의한 ‘시론 동력차노동조합의 귀적에 관하여 --<JR총련에 대한 청취 연구회> 중간보고서’란 논문과 이에 참여하는 히구치 도쿠조(전’노동정보’ 펀집장)등의 움직임이다. 거기서 그들은 JR총령과의 ‘대동단결’이야말로 1047명을 구제하는 길이라고하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츠자키는 지신과 JR총련의 연명을 위해 도즈카등을 앞잡이로 부리면서 1047명 투쟁의 파괴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추악한 몸부림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진에 대한 반혁명적인 적대로 삼아 철저히 단죄하며 분쇄해낼것을 선언한다. 이 글은 그 제1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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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공운동의 50년 새로운 비약 강령초안은 현대의 '공산당선언'이다

혁공운동의 50년  새로운 비약

강령초안은 현대의 ‘공산당선언’이다
 

반제국주의・반스탈린주의의 깃발 아래 대공황을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으로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

1959년 9월 우리 기관지 “전진” 창간호의 권두논문에서 혁공동의 창립자인 혼다 노부요시 동지는 ‘반제국주의・반스탈린주의의 깃발 아래, 혁공동 전국위원회에 결집하라’라며 열렬히 호소했다. 그이후로 50주년을 맞이한 올 가을, 혁공동은 제25회 확대전국위원총회를 개최하여 강령초안을 채택하고, 혁명적 공산주의운동의 신단계 돌입을 선언했다. 이 강령초안을 높이 들고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으로 진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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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공산주의운동의 약년표

혁명적 공산주의운동의 약년표

[전사]

1955년 7월  일본공산당 6전협, 전후혁명 패배의 총괄평가에 대한 일본공산당에 대한 비판 시작했음

1956년 3월  소련공산당 20회 대회에서 ‘스탈린비판’/10월  헝가리 혁명, 청년/학생들 내부에서 스탈린주의와 결별 시작했음

1957년 1월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창립

1958년 ~ 59년  도쿄대, 와세다대 등 일본공산당 대학세포에서 스탈린주의와의 투쟁에 잇따라 승리

1958년 여름  제1차 분열. 트로츠키 교조주의와의 투쟁/12월  공산주의자동맹(분트) 결성

[혁공동 전국위원회 역사]

1959년 8월  제2차 분열. 트로츠키 교조주의와 투쟁하여 혁공동 전국위원회

결성/9월  전국위원회 기관지 ‘전진’창간

1960년 4월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 결성. 분트와 함께 안보투쟁의 선두에 선다.

1961년 1월  마르크스주의 청년노동자동맹 결성/3월  분트의 혁명적 부분이 혁공동에 결집/여름  혁공동 제1회 대회

1962년 9월  혁공동 제3회 전국위원회총회(3 전총). 전투적 노동운동의 방위와 창조, 지구당 건설, 혁명적 통일전선에 대해 결정. 도로치바 노동운동의 원점/연말부터 이듬해 봄  3 전총의 기세에 눌려 쿠로다와 마츠자키 등 도망해 카쿠마루파를 결성, 마츠자키는 구후에 도로본부-현 JR총연의 권력을 잡으며 도로치바에 대해 적대

1964년  원자력잠수함 요코스카 기항 저지투쟁

1965년  한일투쟁(한일조약비준저지투쟁)/8월  반전청년위원회 결성

1966년 8월  혁공동 제3회 대회, 반제국주의/반스탈린주의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입장과 노선을 확립

1967년  2 ~ 7월  스나가와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10월  10•8 하네다 투쟁, 하네다, 사세보, 산리즈카, 오지의 ‘격동의 7개월’

1968년  10월  미군 탱크차 수송저지를 위한 신주쿠 투쟁(소란죄 적용)

1969년  1월  도쿄대 야스다 요새 공방전. 68년 이후 니혼대•도쿄대 등 전국대학투쟁이 고양/4월  오키나와 투쟁(파괴활동방지법 선동죄 적용. 혼다 서기장 등 체포)/10, 11월  ‘제1의 11월 결전’. ‘오키나와 탈환, 안보분쇄•일제타도’를 걸고 학생과 노동자가 무장투쟁에 궐기

1970년  6월  안보투쟁. 혁명적 좌익이 사회당•공산당을 웃도는 대중적인 궐기/7월  투쟁하는 중국인 청년으로부터의 규탄을 받고 ‘투쟁하는 조선・중국・아시아 인민과의 연대전략’을 형성(7•7 자기비판)

1971년  2 ~ 9월  산리즈카 군사공항분쇄의 토지강제수용저지투쟁/11월  오키나와 반환협정비준저지를 위한 ‘제2의 11월 결전’(다시 파괴활동방지법 적용). 11•14 시부야 폭동투쟁으로 후에 호시노 후미아키 동지에게 날조 살인죄로 무기징역공격(현재 옥중 35년)/12월  간사이에서의 카쿠마루의 무장공격으로 중핵파 두학생 학살(12•4 반혁명). 국가권력과 카쿠마루가 하나가 된 반혁명공격에 대하여 이중대치•대 카쿠마루전에 돌입

1973년  9월  백색테러에 대한 혁명적 보복전 개시

1975년  3월  카쿠마루에 의한 혼다 노부요시 서기장 학살(3•14 반혁명). 3•14 보복전에 돌입. ‘선제적 내전전략’을 확립

1977년  8월  도로 치바지방본부가 산리즈카반대동맹 농민과의 노농연대를 걸고 나리타공항으로 제트연료 화차수송저지투쟁에 돌입

1979년  3월 도로치바가 도로본부의 산리즈카투쟁 연대 중단 방침을 거부하여 도로본부에서 분리독립

1981년  제5회 대회. 카쿠마루 백색테러와의 투쟁을 축으로 한 선제적 내전전력 제1단계로부터 일본제국주의 권력에 대한 무장투쟁을 축으로 하는 제2단계로 전환. 국철•산리즈카 결전에 전면적으로 돌입

1985년  10월  산리즈카 2기 착공저지결전/11월  국철분할•민영화반대 도로치바가 파업 돌입. 중핵파가 11•29 아사쿠사바시역 전투

1986년 5월  게이힝칸(영빈관) 로켓탄 전투. 권력은 혁공동 파괴를 위한 ‘5•7 선언’체제 발동/10월  무장투쟁의 비약적인 발전을 지향한 ‘10월의 도전’이라는 폭발물단속벌칙탄압분쇄 투쟁

1989년  7월  하세가와 히데노리씨가 도의원 당선

1990년 천황•산리즈카 결전

1991년  5월  권력・카쿠마루과의 이중의 내전을 승리한 지평을 쟁취하며 노동운동을 기축으로 삼은 5월 테제 노선으로의 전환

1994년  6월  마르크스주의 기본문헌학습시리즈 간행 개시

1995년 가을  19 전총

1997년  12월  20 전총. 시미즈 타케오 의장-아마다 미키오 서기장의 최고지도체제를 공표

1999년  11월 투쟁하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조류 형성을 위해 3노조가 주창하여 11월 노동자집회가 시작됨

2001년  제6회 대회. 쿠로다 –카쿠마루 완전타도 승리선언

2003년  신지도노선/11월  한미일의 국제연대투쟁 시작/12월  신생 마르크스주의 청년노동자동맹 결성

2006년  3월  간사이 노동자동지를 선두로 ‘당 혁명’에 돌입

2007년  1월 계급적 노동운동노선 제시/7월‘7월 테제’를 발표/가을  시오카와 일파가 7월 테제와 계급적 노동운동노선에 적대하며 혁공동에서 도망/12월  신생 간사이당원총회를 개최, 노동자지도부를 축으로 신체제 확립

2009년 7월  샌프란시스코 국제노동자회의/9월  25 전총 개최하여 강령초안을 채택

마르크스주의 학생동맹 1000명, 마르크스주의 청년노동자동맹 1000명 건설과 세계혁명 승리를 향해 매진중!

October 26, 2009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강령초안

<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 綱領草案>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강령초안>

(English) (Japanese

*우리 당의 목적

(1)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사업이다. 이 해방은 자본주의사회의 전면적인 전복에 의해 달성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해방은 동시에 계급사회 하의 모든 억압/차별로부터의 인간의 해방, 즉 보편적인 인간해방이다.

노동자계급은 생산의 담당자이며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임에도, 자본주의 하에서는 모든 생산수단/생활수단을 빼앗겨 자본의 임금노예가 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다. 거기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활동인 노동은, 자본의 자기증식의 수단이 되며,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노동력상품으로 취급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타도하고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분쇄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하고, 자본가계급의 사유재산으로서 존재하는 사회적 모든 생산수단을 단결된 노동자에게 되찾아 스스로의 힘으로 전 사회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폐지함과 동시에 한 계급에 의한 타 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 그 자체를 종결시켜 사회 제 계급에 대한 분열을 없애고 본래의 공동성을 인간에게 되찾는 것이다.

우리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바로 이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투쟁의 전면적인 관철과 그 완전한 승리에 있다. ,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완전타도-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완수와 계급사회의 폐지, 진정한 인간적인 공동사회-공산주의사회의 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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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2, 2009

호세대학교에서의 학생탄압(폭력행위 등 처발법)에 항의하며 8명 학생의 즉시석방을 요구하는 전국선명

1)호세대학에서 날조 체포/기소되어 부당한 장기구류를 당하며 투쟁하고있는 8명의 학생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합니다.
호세대학에서는 5월15일부터 16일에 걸쳐 호대생 10명을 포함한 11명의 학생이 [폭력행위 등 처발에 관한 법률 위반](이후 [폭룍행위 등 처발법]이라 함)으로 날조 체포되어 그 중 5명이 기소되었습냐다. 동시에 4월 호세대 집회를 참가한 것이 [건조물 침입/위력엄무방해]에 해단한다고 하여 날조 체포/기소된 학생을 포함한 총8명의 학생이 감옥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탄압에서는 다수의 호세대생이 [임의의 사정청취]라고 해서 잇따라 공안검사와 공안경찰에 의해 연행되었습니다. 철야를 포함한 장시간의 조사를 강제당하며 완전목비로 투쟁하고 있는 옥중의 동료를 팔아넘기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재판소도 또한 [공판전 증인심문]이라는 이례적인 절차를 사용하여 호새대생을 소환했습니다. 경찰/검찰을 대신하여 밀실에서의 공슬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고액의 과대료를 부과하는 인권침해행위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대미문의 정치탄압에 대해 우리는 강력히 항의하는 바입니다.

2)2006년 3월 이후 호세대애서의 체포자는 총110명, 기소자는 33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 발단이 된 것은 대학내에서의 유인물 살포/입간판을 금지한다는 일방적인 결정에 항의한 학생 29명이 [건조물 침입]으로 체포된 사건 이었습니다. 미리 당국과 짜고 대기하고 있던 200명의 공안형사들이 캠퍼스에 돌입하여 부당체포를 강행한 것입니다. 그후, 이것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에게는 퇴학/정학처분과 체포/기소 탄압이 잇따라 가해졌고, 당국이 용역 폭력적원, 우익 경비원들이 때리고 발로 차는 등의 폭행을 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이다.
그리고 마침내 [폭력행위 등 처발법]이 학생들에게 적용되었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발법은 2차대전 전에 치안유지법과 함께 제정되어 침략전쟁체제의 핵심으로 맹위를 떨친 탄압법입니다. 집단으로의 행동/단결 자체를 범죄로 간주하여 노동운동 탄압의 위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8면의 비고 중에는 학생들의 자치단체인 호세대문화연맹의 집행부 전원과 반전운동의 선두에 서 온 전학련 위원장을 비롯한 3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2차대전 전의 교육과 학문의 압살, 전쟁체제 확립에 갈을 연 1925년의 [교도학련사건](치안유지법 국내 적용1호, 사회과학연구회 학생들에 대한 탄압)을 상기시키는 부당한 정치탄압입니다.
대공황과 전쟁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탄압을 허용해서는 노동조합의 미래도, 모든 사람들의 미래도 없습니다.

3)부당한 언론탄압에 항의하며 진정한 교육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야 말로 정의의 외침입니다. 학생이 대학에서 유인물를 뿌리거나 입간판을 세우거나 연설회와 집회를 여는 것이 범죄일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폭처법위반 용의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전문 앞에 게시되어 있던 당국의 간찬을 학생이 내렸다]라는 것입니다. 이 간판이란, 부당처분된 학생과 고액의 학비를 지불하지 못하게 된 학생의 실명을 공개하여 출입을 금지해 온 간판입니다. 학생들의 입간판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러한 게시물을 교실 입구에까지 붙여 다수의 감시카메라도 학생들의 행동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대학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올 3월에는 [영업권]을 이유로 [정보선전활동(유인물 상포/연설)금지 가처분]까지 발동했습니다.
또한, 호세대 당국은 폭력행위 등 처발법에 대한 날조 체포로 불기소 석방을 쟁취한 호세대생에 대해서도 즉시 정학을 내려 강의실 출입금지라는 폭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경찰/검찰이 하나가 된 호세대 당국의 부패야말로 단죄받아야 합니다.

4)더이상 하루도 더 그들을 옥중의 가둬 둘 수가 없습니다. 현재도 옥중에 있는 8명을 포함한 110명의 학생들은 체포되었어도 한명의 예외도 없이 완전목비/비전향을 관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되는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가슴을 펴고 투쟁을 관철하고 있는 멋진 학생들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호세대에서의 학생탄압에 한의의 목소리를 냅시다. 국가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한하고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지원합시다.
이미 이번 탄압에 항의하는 긴급전국선명에는 불과 일주일 동안 1800명을 넘는 찬동이 전국에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170명을 넘는 변호사가 긴금변호사선명에 이름을 올려주셨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발법 작용에 의한 전원기소]라는 권력의 의도는 이러한 힘에 의해 타파될 것입니다.
나아가, 6월14일에는 시부야에 2100명, 15일에는 호세대 앞에 전국에서 1200명의 노동자/학생이 모여 탄압분쇄와 8명 학생의 석방을 호소했습니다. 이 투쟁에 호세대생이 호응할 것을 두려워한 호세대 당국은 캠퍼스의 모든 문을 폐쇄하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무장경관들을 문앞에 배치하여 호세대생이 밖을 보는 것까지 금지해 보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를 압살하고 학생을 침략전쟁으로 내몰아간 2차대전 전의 대학의 모습 그자체입니다.
노동자/학생/전인민의 힘으로 호세대학과 권력을 더욱더 포위합시다. 학생의 자주적인 활동에 대한 모든 규제를 포기시키고 대학의 자유화와 진정한 교육을 되찿습니다.

끌으로,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1. 8명 학생을 즉시 석방하라 !
   新井拓군(호세대생) 内海祐一군(호세대생) 織田陽介군(도호쿠대생)
   恩田亮군(호세대생) 倉岡雅美씨(호세대생) 斉藤郁真군(호세대생)
   富山小太郎군(교도대생) 増井真琴군(호세대생)
2. 8면 학생에 대한 [접견금지]를 해제하라 !
3. 8명 학생의 재판투쟁/옥중투쟁을 지원히며 함께 승리하자 !